저명한 기독교 철학자가 장성한 큰 아들을 사고로 잃은 후에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확신이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단순히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슬픔과 분노 때문에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아 즉흥적으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책에 쓸 정도로 정돈된 감정으로 하나님이 슬픔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는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신뢰가 없어지면 보호해 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게 됩니다. 이처럼 지독한 고통과 슬픔을 겪게 되면 과연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것이 맞느냐란 회의적인 생각이 듭니다. 평범한 삶을 살아갈 때에는 쉽게 믿어지던 것이 감당하기 힘든 상실의 아픔을 겪고 나면 자꾸 의심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 있는 이에게 시인의 말은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는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변호해 주시며 궁핍한 자에게 정의를 베푸시리이다”고 합니다. 이것이 상실의 고통 중에 있는 이에게는 조금도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의 말은 조금도 틀린 부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변호하고 계십니다.
시인은 현재 매우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는 “그들이 마음속으로 악을 꾀하고 싸우기 위하여 매일 모이오며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고 자신의 처지를 묘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과연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한 아픈 기억 때문에 하나님께 더 이상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우리는 보호받지 못한 경험 속에서도 시인처럼 “여호와여 나를 지키사 악인의 손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나를 보전하사 포악한 자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시인처럼 “내가 여호와께 말하기를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여호와여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간 상태일지라도 우리는 있는 그대로 주님의 도우심을 다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될 때에야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 시편은 다윗이 쓴 글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윗이 겪은 위기의 순간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사울왕의 사위가 된 이후에 살해 위협을 얼마나 자주 당했는지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왕의 사위가 되었음에도 그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숱한 고생을 겪습니다. 그 뿐 아니라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 다시 한 번 도망자의 신세가 됩니다. 서로 다른 이유 때문에 도망자가 되지만 그가 겪은 수치, 모멸, 두려움은 매우 심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시편에서 그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평탄치 못한 인생, 끝없이 밀려오는 불행, 지속적인 죽음의 그림자 등에도 올곧게 주님만을 바라보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평안과 안전 속에서 신앙을 유지하려는 우리의 기대와 달리 하나님은 광야 같은 곳에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사안일한 삶에서만 하나님을 신뢰하려는 유혹을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신뢰가 무너지려 할 때가 신앙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