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거룩함을 포기할 수 없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분의 거룩함을 닮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는 이것보다 다른 것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듯 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성도’란 단어에 깊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성도’란 경건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오늘의 시편도 이 단어를 여러 차례 사용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성도의 모임을 가리킵니다. 시인은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고 하면서 거룩한 이들의 공동체가 어떤 모습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의 공동체로서 교회는 이 땅에 존재합니다. 거룩함이 단순히 도덕적 행위가 아닌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상태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교회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은 거룩함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거룩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이 우리 위에 임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거룩함이 우리 안에 가득하면서 우리의 지성, 감성, 의지에 묻어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사회 생활 속에서 여러 관계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에게서 온 거룩함이 우리의 인격을 통해 사회로 퍼져 나가는 모습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성도로 부르신 의도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이 찬양을 통해 우리 위에 임하시기도 합니다. 우리는 “자기를 지으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그들의 왕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지로다”는 시인의 찬양에 깊이 동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즐거움에 깊이 젖어 있다보면 우리의 내면이 새로운 은혜로 가득찰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이 마치 옷을 입듯이 우리에게 입혀질 것입니다. 그 옷을 보면서 우리 자신이 얼마나 거룩해졌는가란 자긍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더욱 깊이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거룩해지는 자신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를 실제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족하고 어리석은 우리를 기뻐하시는 것에 진정한 만족을 느끼며 그분 앞에서 우리 자신을 계속해서 낮출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시인의 고백처럼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그들의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를 실천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삶이 계속될 때 우리의 거룩함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의로운 행위를 하나 더 행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녹아드는 찬양과 즐거움이 우리 안에 더욱 커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가득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영광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거룩한 모습입니다. 성도의 영광은 이 땅에서 누리는 물질적 풍요나 만사형통에 있지 않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성도로서 영광스러운 모습입니다. 이 영광을 우리가 포기하는 것은 너무도 큰 불행입니다. 우리는 어떤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하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로서의 영광을 우리는 찬양을 통해 더욱 강렬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찬양을 통한 영광은 교회가 맛보는 영적인 축복입니다. 이 축복을 누린다면 우리는 이 자리에서 더욱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