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격언이 있습니다. 성공 이전에 무수히 많은 실패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교훈적인 말입니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함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실패로 인해 낙심하고 좌절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실패는 매우 쓰리고 아픕니다. 누구든 실패를 경험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실패를 거치지 않고 무엇이든 성공하고 싶어합니다.
신앙에 성공과 실패를 연결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공한 신앙, 실패한 신앙이 과연 있을까요? 신앙의 성공과 실패를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성공과 실패란 잣대로 신앙을 평가하고 싶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신앙적으로 실패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다윗을 보면, 모범적인 신앙 생활을 했던 그가 욕망에 사로잡혀 죄의 노예로 전락했던 모습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해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했던 실패한 모습을 갖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시편 저자는 어떤 사람의 속마음을 읽어내고 있습니다. 시인은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면서 “그가 스스로 자랑하기를 자기의 죄악은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고 평가합니다. 과연 이 사람이 신앙인이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물론 참 신앙인은 이런 마음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신앙인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 보다는 사람의 시선을 더 두려워하면서 살 수는 있습니다. 사람을 너무 의식하는 바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람이 모르면 안도의 한숨을 쉴 뿐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이런 신앙의 모습은 영적으로 심각한 상태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신앙적으로 조금도 승리의 기쁨을 맛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침체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시인은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쳐” 있다고 말합니다. 엄마가 자녀에게 ‘엄마를 얼마나 사랑해?’라고 물으면 ‘하늘만큼 땅만큼’이란 답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설명하기 어려울 때 ‘하늘만큼 땅만큼’이라 표현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란 하나님의 사랑이 하늘에 이를 정도로 무한하다는 뜻입니다. 시인은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라 했는데, ‘보배롭다’는 것은 ‘가격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가치가 무한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물질적인 잣대로 측정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사랑의 승리는 그 혜택을 누리는 사람에게는 비교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과연 이것을 우리가 누리고 있느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승리하셨는데, 그 사랑의 혜택을 우리가 어느 정도로 실감하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적으로 실패를 극복하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