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자녀의 든든한 후원자입니다. 자녀의 능력에 관계없이 항상 지지하는 부모의 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함함하다’는 ‘털이 보드랍고 반지르르하다’인데, 제 새끼의 날카로운 가시도 부드럽다고 감싼다는 의미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어떤 허물이라도 감싸안을 수 있습니다. 물론 부모의 무분별한 사랑이 버릇없고 사리분별 못하는 자녀로 키울 수 있습니다. 사랑의 부작용은 무조건 감싸안을 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렇듯이 부모의 사랑이 아무리 깊고 넓다해도 자녀를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이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신다”고 하면서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다”고 고백합니다. ‘인자하심’이란 ‘한결같은 사랑’을 뜻합니다. 정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정의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우리를 향해 눈 먼 사랑을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자기 자녀의 일이라면 맹목적으로 덮어주고 감싸주고 이해해주는 사랑을 하나님은 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버릇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무리 깊고 넓다해도 우리가 마음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연약하지 않으십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해도 지켜주지 못하는 약함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으로 하늘을 지으셨고 나라들의 계획을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시편은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다”고 노래합니다. 정의로움으로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굶주릴 때에 살리실 수 있는” 능력자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시는” 섬세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아픔과 슬픔, 고통을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삶에 아무런 관심도 없이 하늘에서 신선놀음하시는 분이 절대 아니십니다. 이 정도로 세밀하게 우리를 살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제로 받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시편은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받은 백성은 복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알면 알수록 우리는 삶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현실의 답답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깊이는 우리의 영혼을 채우고 그분만을 바라보게 합니다.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라고 시편이 노래하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갈망하고 체험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마음이 그를 즐거워하는” 행복을 우리는 누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를 깊이 사랑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