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기적같은 일들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의사도 포기한 환자가 어느날 완쾌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망해가던 사업이 어느 순간 잘 풀려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간증을 통해 듣습니다. 물론 남에게 일어나는 기적이 왜 나에게는 없는가하는 탄식을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 기적이 필요한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깊은 한숨이 터져나옵니다. 바로 이런 순간에 우리의 마음에 파고드는 유혹이 바로 사행심입니다. 한 방으로 인생의 역전을 꿈꾸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것에 투자하면 앉아서 돈을 벌 수 있다는 허황된 말에 속아 넘아가는 것입니다. 기적 같은 일을 너무도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 사로잡히면 판단력이 흐려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을 보면 수많은 기적들이 하나님에 의해 일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시편도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란 말이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인생 속에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자는 시인의 목소리가 우렁찹니다. 예를 들어, “여호와께서는 강이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샘이 변하여 마른 땅이 되게” 하시는 분이심을 시인은 찬양하고 있습니다. 또한 “광야가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이 변하여 샘물이 되게” 하시는 기적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기적들이 나타난다면 우리는 당연히 목소리 높여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기적을 그분의 인자하심과 연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인자하심’은 ‘변함없는 사랑’을 가리킵니다. 시인은 기적을 사랑의 증거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 말을 오해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항상 기적을 주셔야 한다는 오해입니다. 기적으로 사랑을 확인하려는 잘못된 습관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즉, 기적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오류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기적보다 크신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기적을 통해 사랑을 표현하시는 하나님의 속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시인이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란 문구를 반복해서 사용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깨달아 그분을 더욱 사랑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사랑의 기적을 말하면서 “지혜 있는 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지켜 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는 기대감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아는 것이 가장 귀한 깨달음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로 하나님을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단순히 어려움이 해결되어서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진정 사랑할 수 있게 합니다. 이렇듯이 하나님이 베푸시는 사랑의 기적은 우리 안에 또 다른 모습의 사랑의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사랑의 기적은 우리가 하나님을 그 누구보다 사랑할 때 완성됩니다. 우리 삶에 사랑의 기적이 이어진다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도 더 깊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