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듣기만 해도 힘이 되는 말에 목말라 합니다. 그냥 듣기 좋은 말이 아닌 마음을 울리는 말 한마디를 듣고 싶어합니다. 단순한 칭찬의 말일지라도 사람을 기분좋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격려의 말은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마음 속 깊숙히 들어온 격려의 말은 오랜 시간 우리의 마음을 살찌우는 마력이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 이 정도로 강력한 격려의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나친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장황한 말로 기분 좋게 해준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과장된 표현과 비현실적인 칭찬은 진실성에 의문을 품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그것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심어린 격려의 말을 듣고 싶어합니다. 특히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격려의 말은 우리의 영혼을 살찌웁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시기에 우리의 기분만 좋게 해 주는 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깊은 속까지 꿰뚫고 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겉모습만 보고 위로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완벽해야만 칭찬해 주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그러했다면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가요?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시기에 우리에게 맞는 격려의 말을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약하면 약한대로, 실수하면 실수한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우리의 수준에 맞게 격려의 말을 해 주실 수 있는 놀라운 분이십니다.
시편 저자는 이렇게 따뜻한 격려의 말로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시는 하나님께 깊이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지 그는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고 말합니다. 또한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라 고백합니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하나님 옆에 바짝 붙어있고 싶어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찬 모습이 부럽기만 합니다. 시편 저자는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항상 가까이서 뵙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나님과 떨어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모습입니다. 이 모습이 우리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켜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이 정도로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싶어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따뜻한 격려의 말로 채워진 영혼은 하나님과 떨어지려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강한 확신에서 나옵니다. 시편 저자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나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게 합니다. 이런 마음이니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고 당당하게 외칩니다. 우리는 오늘도 주님으로부터 오는 따뜻한 격려의 말을 듣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영혼을 살찌우는 격려의 말을 듣고 새로운 힘을 내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방식으로 우리의 이러한 갈망을 채워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