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깊은 신앙으로” (시편 22편 묵상) – 4/4/2020

우리는 때로 답답한 일을 당합니다. 지금 세계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출구를 찾지 못한채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현실이 답답하면 여행을 떠나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탁 트인 바닷가를 보고 싶어도 눈치가 보여 밖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나갈 수 있음에도 나가지 않는 것과 나갈 수 없어서 나가지 못하는 것은 매우 다른 상황입니다. 자유로운 사회이지만 자유를 억제해야만 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답답함은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억울한 일을 당합니다. 답답한 현실에서 억울한 일까지 겹치면 우리는 견딜 수 없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잘못이 없음에도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생기면 얼마나 억울합니까? 작은 실수일 뿐인데 대가를 너무 크게 치르면 그것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어 감옥에 갇혔어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인데, 평범한 삶에서 너무도 큰 피해를 당한다면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더군다나 피해를 입었어도 호소할 곳이 없다면 마음의 고통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낙심합니다. 답답하고 억울한 일이 겹치면 마음이 우울해집니다. 우울한 마음이 커지면 스스로 그것을 통제할 방법이 없게 됩니다. 이로인해 많은 부작용들이 우리 일상을 뒤흔들어놓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감정 상태로 인해 가족이 피해를 입게 되고 누군가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고통을 당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인터넷 세상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댓글을 통해 인격 살해를 서슴치 않는 현상은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시편 저자는 답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함으로 마음이 우울한 상태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그는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한다”고 표현합니다. 그를 미워하는 사람들의 인격 살해에 가까운 비방과 비웃음으로 그의 인격이 심각하게 손상되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견딜 수가 있을까요?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온 것인지를 놓고 고민할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분석할 것입니다.

신앙인은 하나님께 기도할 것입니다. 시편 저자는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기도에 매달렸습니다. 답답하고 억울하고 마음이 우울함에도 기도할 수 있다니 그는 대단한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편 저자는 응답받지 못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다”고 고백합니다. 또한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실망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더 깊은 신앙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도 더 깊은 신앙으로 답답한 현실을 이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