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관계를 난로에 비유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사람을 너무 가까이하면 실망과 상처가 생기기 쉽고, 너무 멀리하면 매정하고 기계적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좋습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분을 향한 경외심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가까워지면 편해지기는 하지만 말실수를 해서 서로 상처를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그분을 더욱 우러러보게 만듭니다. 오늘의 시편은 이같은 마음으로 지은 시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인의 목소리에 신뢰와 경외심이 잔뜩 묻어납니다. 예를 들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이로다”는 시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물론 이것을 단지 말로만 할 수 있습니다. 메마른 감정 상태에서 지식으로만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하나님을 가까이한 경험으로 이렇게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성도 곧 그를 가까이 하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에서 그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를 가까이 하는’ 신앙인이 되면 높고 뛰어나신 그분의 위엄 앞에 서게 될 뿐 아니라 그분을 섬기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이렇듯이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은 신앙인에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시인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든 세계가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강력히 외치고 있습니다. 그는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할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는 그의 신앙관 때문입니다. 하늘이 아무리 높다해도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해와 달이 인류에 주는 유익이 아무리 대단해도 하나님의 작품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시인은 더 깊이 들어가 “그가 또 그것들을 영원히 세우시고 폐하지 못할 명령을 정하셨도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주 만물의 운행과 법칙, 위치와 활동 등에 하나님의 손길이 깊이 개입되어 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해의 위치가 조금만 바뀌어도 우주에 어떤 재앙이 미칠지 과학자들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지구 중력이 조금만 줄어도 세상은 엄청난 변화를 겪을 것이라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기에 이 세상이 온전히 유지되고 있음을 우리는 얼마든지 고백할 수 있습니다.
시인이 자연 만물과 세상의 모든 생물체를 향해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말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단 하나도 예외없이 온 세상은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해도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이들로서 더욱 소리 높여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세상 모든 생물들이 우리처럼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들과 고관들과 땅의 모든 재판관들” 위에 계시는 가장 위대한 왕이십니다. 그분을 섬기며 따르는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도 주님을 높이고 찬양하며 기뻐하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