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 중 전도서를 보면 매우 놀라운 지혜들이 넘쳐납니다. 그 중의 한 대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이것은 인류의 진보를 무시하는 말이 아닙니다. 새로운 발명들이 출현하는 문명 사회에서 이 말씀은 비현실적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과거에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업적들이 우리 시대에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도서가 말한 “해 아래에 새 것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시각에서 접근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과연 새 것이 있을까요? 하나님도 상상하지 못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실 수 없는 유한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처음과 끝을 아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바이러스의 공격을 신앙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슈퍼급 전염성 앞에서 불안과 두려움으로 위축된 세상 속에서 과연 교회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면 될까요? 하나님이 보호하시면 절대로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을까요? 바이러스에 걸리면 하나님이 버리신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바이러스에 걸리든 그렇지 않든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바이러스에 걸리면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셨거나 외면하신 것이 절대 아닙니다. 바이러스가 신앙의 기준이 될 수가 없습니다. 바이러스를 기준 삼으면 하나님은 주변으로 밀려나고 바이러스가 주인 행세를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 자신의 백성을 잊지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연약해서 시편 저자처럼,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라고 탄식합니다. 이것은 연약함의 표현이지만 신뢰하지 못하는 마음을 드러낸 것일 수 있습니다. 현재의 고통과 두려움, 불안에 휩싸여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신을 얼마든지 표출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도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지 못하시니 우리 스스로 보호하자는 불편한 마음을 이런 식으로 표출할 수 있습니다.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이 떠나지 않는 상황에서 과연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바이러스로 인해 사망의 잠을 잘 수 있다는 가능성 앞에서 과연 누가 담대해질 수 있을까요?
시편 저자는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가 하나님을 이긴 것처럼 기세등등합니다. 교회도 바이러스가 하나님을 이겼다고 할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공적 예배가 중단되고 성도간의 교제가 단절되고 기도 모임이 힘을 잃었습니다. 교회는 완전히 바이러스 앞에서 무장해제된 것 같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시편 저자는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다”고 합니다.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할 것”이라 다짐합니다. 지금이 우리 신앙의 상태를 점검하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주의 사랑을 의지하는지, 주의 구원을 기뻐하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이것이 확실하면 잠시 주춤하고 위축되지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