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사회에서 모든 주권은 국민에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가치입니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물러설 수 없는 헌법적 가치입니다.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일지라도 하나의 국민으로서 존재하며 국민을 위해 나라를 이끌어가는 책임을 맡았을 뿐입니다. 대통령이 국민을 다스린다는 개념은 현대 민주 사회에서는 매우 낯선 개념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왕정 시대의 개념인 ‘다스림’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왕은 백성이 뽑은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왕이 백성 위에 군림해서 다스리는 일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시인은 “여호와께서 다스리신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왕정 시대에 맞는 매우 적절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의 왕으로서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이것은 세상이 하나님을 왕으로 선출해서 통치할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누군가에 의해 세워진 존재가 아니십니다.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다”고 시인이 말하듯이 하나님은 스스로 왕으로 존재하십니다. 이것을 시인은 “여호와께서 능력의 옷을 입으셨다”고 달리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으로 왕의 권위를 세상에 나타내십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세상도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을 신뢰하기에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국민에게 주권이 있다고 하는 민주 사회에서도 하나님은 왕으로서 다스리십니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하나님과 세상의 관계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가짜왕으로 공중의 권세를 잡은 존재가 있습니다. 마귀라고도 하는 사탄이 지금도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진짜왕이신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왜곡시켜 세상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참된 왕이신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거절하고 헛된 것에 굴복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상 숭배의 실체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거절한 곳에 우상이 왕처럼 군림합니다. 그 형태와 모양은 다양할지라도 우상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상은 온갖 헛된 욕망을 미끼로 세상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이것을 거절할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인정할 때 생깁니다.
시인은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서 있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그것은 “주는 영원부터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거절하는 우상들이 많다해도 주의 보좌는 절대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울이 말했듯이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십니다. 이것이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크다”고 시인이 말한 참된 의미입니다. 우리는 “주의 증거들이 매우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니 여호와는 영원무궁하심”을 믿는 신앙인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누군가의 다스림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일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왕되심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비교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이 축복을 소유한 자로서 우리는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신뢰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