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아짐” (시편113편 묵상) – 7/15/2020

능력이 곧 실력이라 말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추어야 되는지에 대한 기준 자체가 정해진 것이 없기에 사람들은 매일 노력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노력이 성과를 가져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아무도 그것을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뿐 아니라 직급이 올라가면서 능력을 인정받으면 세상이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능력을 인정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각자 자신의 일을 통해 성취감을 맛보고 사람들이 응원해주는 사회에 산다면 그곳이 천국이라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능력이 곧 실력이라 하지만 항상 그렇게 작동되는 사회가 아닙니다. 높은 위치에 있는 이에 의해 인정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한 사회입니다. 높은 자리에 앉은 이의 영향력이 막강하기에 누구나 그 자리를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신앙인에게 오늘 시편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시인은 “여호와는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도다”고 한 후에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스스로를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계시는 하나님을 독자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가장 높은 곳에 계신 분이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셨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낮추사 낮은 곳을 살피고 계심을 시인은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찬양하면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시편113편을 예수님에게 적용해서 재해석한 것 같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낮추심이 예수님 안에서 완벽히 성취되었고 그 덕택으로 죄인에게 살 길이 열렸다는 복음의 이야기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낮추심이 어떤 결과를 가져온 것인지를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세워”로 표현합니다. 또한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언급된 이들은 당시 사회에서 가장 약한 계층에 속하는데, 사회 지도층에 의해 전혀 보호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가장 높은 곳에 계시지만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힘없고 연약한 이들을 돌보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낮아지심을 그대로 실천하셨습니다. 그렇게 생긴 공동체가 교회이기에 세상은 교회를 통해 낮아짐이 무엇인지를 보게 됩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얼마나 잘 드러내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가 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한다면 세상은 우리를 통해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낮아짐이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명심할 때 우리는 예수님을 세상에 제대로 보여줄 수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