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허무하다는 생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성경 책 중 전도서는 첫 장부터 인생의 무상함에 대해 거침없이 표현합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는 말은 유명합니다. 그가 사용한 또 다른 유명한 표현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란 문구입니다. 바람을 손으로 잡으려는 헛된 짓을 우리는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삶을 돌아볼 때 그와 같은 헛된 일에 매달렸던 적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부질없는 말과 행동이 참으로 많았음을 우리는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허무주의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인생의 참된 진리를 알게 된 사람으로서 그런 함정에 빠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반석과 요새이신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물론 시간 차이는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만난 이가 있는 반면 죽음 직전에 만난 이도 있습니다. 시인은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아마도 그는 어린 나이 때부터 주님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그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다”는 확신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물론 죽음 직전에 예수님을 믿어도 이런 고백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청년의 나이에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났음에도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 고 에베소서1:4에서 말한 바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고 난 후 깨달은 영적인 세계의 독특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시간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있던 자신의 인생을 알게 된 솔직한 고백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허무주의란 함정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인생의 반석과 요새이신 하나님을 만났지만 우리는 영혼을 엿보는 자들로부터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은즉 따라 잡으라 건질 자가 없다”는 무서운 공격을 받기도 합니다. 우리 영혼이 이런 무신론적인 공격에 의해 짓눌리고 비참해질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한 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귀에 들릴 수도 있습니다. 신앙의 허무함에 빠져 허우적대는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눈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시인처럼 “주는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소서”란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란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심한 고난”으로 인해 마음이 피폐해질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실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꾸준함입니다. 우리는 평탄대로를 달릴 수만은 없습니다. 때론 험한 계곡과 깊은 수렁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 찬송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전히 우리는 “측량할 수 없는 주의 공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석과 같은 꾸준한 신앙은 지금처럼 어렵고 힘든 시기에 우리를 더욱 더 강력히 붙들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