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흔적” (시편108편 묵상) – 7/9/2020

우리는 자녀가 구김살 없이 자라기를 바랍니다. 좋은 환경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다면 별 탈 없이 클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모의 책임을 다하는 것은 자녀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자녀들은 상처를 받으면서 자랍니다. 부모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녀들은 크고 작은 아픔을 겪습니다. 그것까지도 막아주고 싶지만 부모로서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는 영역입니다. 하지만 자녀의 마음에 새겨진 아픔의 흔적들이 무조건 잘못된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의 인격으로서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깨지고 부서지는 고통을 겪으면서 인격이 형성되고 독립된 인격체로서 성장합니다. 마냥 어리게만 보이던 자녀들이 어느 순간 성숙한 모습을 보일 때 부모는 비로소 인식합니다. 부모의 의도와 관계없이 자녀들이 자라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자녀들 안에 있는 깨진 흔적들이 성장의 동력임을 알게 됩니다.
오늘 읽은 시편에서 시인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드러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들을 밟으실 자”이심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함께라면 그 어떤 적들과 싸워도 승리할 것이란 자신감을 보여줍니다. 시인은 이 자신감을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로 드러냅니다. 배가 항해를 마치고 부두에 정착하듯이 하나님께 마음을 고정시키는 모습입니다. ‘마음을 정하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시킨다’는 뜻으로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두겠다는 강력한 의지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의 신뢰가 얼마나 견고한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시인은 실패한 경험이 전혀 없이 매번 승리만 한 것일까요? 신앙적으로 깨진 흔적이 없었기에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깨진 흔적을 숨김없이 드러냅니다.
시인은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의 군대들과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고 심적 고충을 드러냅니다. 그에게 신앙적으로 깨진 흔적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아마도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승리할 것을 예상했다가 낭패를 당했던 경험을 이렇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아이성 정복에 실패했던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여리고성을 전투도 없이 정복했던 이스라엘은 작고 약한 아이성 정도는 쉽게 정복할 것으로 생각했다가 크게 패했습니다. 이와 같이 시인도 과거에 신앙적으로 큰 실패를 겪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고 마음을 정합니다. 깨진 흔적이 있음에도 그것이 신앙적으로 발목을 잡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했음을 충분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는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란 기도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시인처럼 우리는 깨진 흔적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신뢰에 금이 갔다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어 견고한 성읍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어려운 시대를 이기는 신앙인의 올바른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