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 발달은 정보의 생산과 공유를 극대화시키고 있습니다. 뉴스가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있습니다. 정보의 확산은 누구나 지식을 갖도록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깊이 있는 지식은 아니더라도 정보 차원에서 많은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매일 쏟아지는 정보를 다 읽거나 들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정보를 취사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무엇을 읽고 듣느냐는 문제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관점의 차이가 생기는데, 어떤 관점으로 사건을 볼 것인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집니다. 해석의 차이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기도 하지만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합니다. 해석의 다양성은 신앙 영역에도 존재합니다. 성경 해석의 다양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인데 해석은 여럿입니다. 같은 본문을 보더라도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집니다. 어떤 해석에 귀를 기울일 것인지를 심각히 고민해야 할 시대입니다. 서로 반대되는 해석을 읽을 때에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를 지경입니다.
성경을 읽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항상 옳은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일은 기독교인에게는 가장 중요한 삶의 원칙입니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내려는 노력은 항상 유지되어야 합니다. 하나의 예로, 시인은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한다”고 말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큰 도전을 주는 말씀입니다. 삶의 중요한 요소인 물질 소유를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성경을 읽고 들으면서 깨닫는 일은 이렇듯이 우리 삶에 여러 변화를 일으킵니다.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일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시인은 강조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와 정반대 논리로 물질 만능주의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목소리를 다 듣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의 세계로 들어가면 재물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지만 현실의 세계로 나오면 재물의 힘을 찬양하는 목소리에 기가 죽습니다. 성경이냐 현실이냐의 갈림길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시인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따르라고 호소합니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면서 성경이 가르쳐 주는 삶을 따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부유한 사람이 죽으면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한다”고 하면서 재물의 풍족함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지만 현실은 재물이 주는 달콤함이 너무도 강력합니다. 성경을 통한 깨달음이 우리에게 생길 때 현실은 그것을 무시하거나 거절하게 합니다. 깨달음을 유지할 것인지, 현실에 충실할 것인지를 놓고 신앙적인 갈등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의 깨달음으로 현실을 극복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한 깨달음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의 깨달음으로 현실을 극복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