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요청” (시편38편 묵상) – 4/23/2020

죄책감은 우리의 보편적 감정 상태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매우 특수한 감정 상태입니다. 이것은 신앙이 생긴 후에 나타나는 새로운 감정입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신앙인에게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영적 감각이 살아나고 죄를 지었을 때 그 감각이 우리로 죄책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매우 건강한 죄책감입니다. 신앙인으로서 느끼는 죄책감은 하나님 앞에 우리를 세우는 강력한 자석 역할을 합니다. 죄책감이 건강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더욱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시인은 “나의 죄로 말미암아 내 뼈에 평안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죄책감을 이 정도까지 느낄 수 있다니 놀라울 뿐입니다. 뼈에 평안함이 없다니 이것은 마음이 괴로운 수준 이상입니다. 우리는 잘못을 했을 때 마음이 괴로울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좀 더 긴 시간동안 마음의 평안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뼈에 평안함이 없는 괴로움은 상상하기 힘든 수준입니다. 시인은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까지 힘들어할까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큰 죄를 지었다고 이렇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앙 양심이 예리하게 살아 있어서 작은 죄도 크게 보였다고 봐야 합니다. 같은 죄를 지어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듯이 신앙적 죄책감도 신앙인마다 다릅니다.

죄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우면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픔 중에 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할” 정도로 자신을 괴롭힙니다. 과연 이 정도까지 죄책감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신앙인이 얼마나 있을까요? 과연 이렇게 반응하는 것이 건강한 모습일까요? 극도로 자신을 괴롭히면 역효과가 생겨서 우울증이 생기고 신앙적으로 하나님을 더 멀리하지 않을까요? 적절하게 죄책감을 느끼고 적당히 괴로워하는 정도에 머무는 것이 정신 건강에 더 좋지 않을까요? 죄책감을 얼마나 크게 느끼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느냐입니다. 죄의 무게에 짓눌려 하나님을 멀리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신앙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죄책감이 하나님 앞에 서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시인은 “여호와여 주의 노하심으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주의 분노하심으로 나를 징계하지 마소서”란 건강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 앞에 감추이지 아니한다”는 태도는 건강한 죄책감이 주는 선물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우는 신앙인은 죄의 무게에 짓눌려도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실 것”이란 확신을 품을 수 있습니다. 이런 확신을 갖고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말아 달라”는 마음으로 “속히 나를 도우소서”란 긴급 요청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죄의 수렁에서 빨리 건져달라는 긴급한 요청은 우리 신앙의 건강성을 확인시켜주는 훌륭한 신앙 자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