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이론 보다는 실천이 더 중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물론 잘못된 기도 이해가 잘못된 실천을 낳기도 하지만 실천하지 않은 채 이론적으로 기도를 아무리 깊이 이해한들 아무 소용이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기도 생활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놓고 고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응답되지 않는 기도 경험입니다.
도움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면 다시 찾아가기 어려운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응답하지 않으신 하나님에 대한 기억은 기도 실천을 주춤하게 만듭니다. 또 거절당할까 하는 두려움과 서운함, 그리고 원망 등이 섞여 기도 생활을 중단하게 만듭니다. 이런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기도하려면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할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기도 생활에서 가장 큰 장애물 중의 하나로 ‘낙심’을 꼽으셨습니다. 낙심이란 더 이상 기대하지 않고 포기하는 자세입니다. 기도하다 낙심하는 것은 더 이상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 포기 사태를 걱정하신 예수님이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낙심하지 않고 기도를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낙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한 과부 이야기를 통해서 기도를 포기하면 안됨을 강조하셨습니다. 원한에 사무친 비참한 현실 속에서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던 딱한 처지의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을 포기하지 않고 찾았습니다. 재판관인데 불의한 사람이기에 당연히 과부의 요구를 묵살했습니다. 과부의 절망은 더욱 더 깊어졌습니다. 과연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불의한 재판관을 계속해서 찾아가 하소연하는 것 뿐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길 뿐입니다. 과부는 원한을 반드시 풀어야 했기에 포기하지 않고 불의한 재판관을 계속해서 찾아갔습니다.
예수님은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고 과부 이야기를 하나님과 연결시키셨습니다.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한 쓸쓸한 기억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냐를 되새기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우리의 절박함 보다 더 신경써야 하는 대상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바른 이해입니다. 이것을 확신할수록 우리는 기도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해 주시지 않으면 모든 것이 끝장날 것 같은 절박한 시기를 맞이하면 기도 응답은 더욱 절실해집니다. 하나님은 잊어버린채 무조건 들어주어야 하는 절박한 우리의 형편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고 있지만, 기도 대상이 누구신가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은채 왜 기도 응답이 없느냐에 대한 원망만이 늘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의 기도에 오래참지 않으심을 믿는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오래참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를 우리는 계속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절박함과 오래참지 않으시는 하나님 사이에서 우리의 신앙은 더욱 커질 수도 있고, 무너질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 응답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기도를 통한 하나님 신뢰가 더욱 급선무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