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없이 지내십니까?

우리가 복음서를 읽으면서 자주 목격하는 것은 예수님의 기도 생활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만 봐도 그의 기도 생활은 남달랐습니다. 아무리 피곤한 하루라 해도 밤새도록 기도하곤 하셨습니다. 또한 아주 중요한 결정을 하실 때에도 기도에 전념하셨습니다. 특히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보여주신 기도의 모습은 처절할 정도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얼마나 진력을 다하는 기도였는지를 보여주는 표현이 있습니다. 누가는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고 적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밤낮을 가리지 않으시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시고 기도 생활에 충실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단순히 ‘그럼 우리도 예수님처럼 기도하자’고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기도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비슷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예수님처럼 기도하자는 데에 이의를 쉽게 제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빠뜨린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셨듯이 우리도 기도하자는 논리를 펴기 전에 예수님이 왜 그렇게까지 기도하셨는가를 풀어내야 합니다. 예수님은 왜 기도하셨을까요? 왜 기도 없이 지내지 않으셨을까요? 우리는 기도 없이 지내도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데, 예수님은 기도 없는 생활을 용납하지 않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기도를 부족한 자가 완전한 자에게서 채움 받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무엇을 해결해 달라거나 어떤 위기를 극복하게 해 달라거나 질병에서 낫게 해 달라는 등 우리는 기도할 때 필요한 부분을 채워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전부 이런 관점에서 시작을 합니다. 우리 힘으로 해 낼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해결하려는 도구로 기도를 사용합니다. 이것이 과연 잘못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병든 자는 낫기를 위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히스기야는 죽을 병에 걸렸을 때, 낫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 노예생활에서 구출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부족한 것을 채워달라는 기도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기도를 접근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는 분으로만 여겨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격성과 관계성을 무시한채 우리의 필요만을 채워주는 알라딘의 지니와 같은 존재로 전락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런 식의 기도 생활은 치명적으로 우리가 기도 없이 지내도록 부추깁니다. 꼭 무엇이 필요할 때만 기도하는 습관에 빠져버립니다.

예수님이 기도 없는 삶을 용납하지 않으신 이유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느날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8:29) 하나님이 예수님과 항상 함께 하셨다는 분명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혼자 두신 적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바로 이것에 근거해서 예수님은 기도 생활을 하신 것입니다. 기도 없는 삶을 상상하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동행을 확인하고 체험하고 새 힘을 얻는 것이기에 예수님은 기도를 중단하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예수님에게 가장 큰 즐거움이셨습니다. 그렇기에 기도가 습관이나 도구나 의무가 아니라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 없는 생활을 용납하시지 않은 이유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가요? 기도 없이 지내고 있습니까? 기도 없이 지내도 불편함이 없으십니까? 그것은 필요한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동행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의 즐거움은 우리로 기도 없이 살 수 없게 만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