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는 사람에게 일분일초는 천금과 같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인지를 우리는 “나의 영혼을 찾는 자들”이란 시인의 말에서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일 수 있습니다. 힘있는 이들이 그의 삶을 절벽으로 몰아가는 형국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인의 삶의 정황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 “속히” 도와달라고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위급한 일들을 겪습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고통스러운 일이 눈 앞에 펼쳐지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속담이 있지만 현실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유없이 누군가의 미움만 받아도 분노로 인해 마음이 어지러운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작은 상처라 할지라도 우리를 얼마든지 괴롭힐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려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우리는 시인처럼 얼마든지 하나님을 향해 “속히 나를 도우소서”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위급한 일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찾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삶의 뿌리까지 흔들 정도로 힘든 일을 겪을 때 우리가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의 역경을 벗어나는 것만을 목표로 삼지 않는 것입니다. 시인은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어려움을 겪으면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런 경험은 우리로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환희를 맛보게 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라 기도합니다.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곧 ‘하나님은 위대하시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단순히 어려움을 벗어난 자로서 예우 차원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모습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새로운 차원의 삶의 환희에 들어선 모습입니다.
구조 요청은 우리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겪을 때마다 하나님께 할 수 있습니다. 시인처럼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라고 간절히 외칠 수 있습니다.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자유롭게 해 주시듯이 우리를 삶의 덫에서 건져주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위대하시다’는 진심어린 고백입니다. 구조 요청에 응답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위대하신 것이 아닙니다. 원래 위대하신 분으로서 우리의 외침에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위대함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구조 요청을 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마음 속 깊이 새겨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로 어려운 현실 앞에서도 꿋꿋히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도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