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림돌” (시편73편 묵상) – 5/29/2020

멀쩡히 길을 걷다가 갑자기 넘어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길가에 뭔가 돌출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살짝 놀래는 정도면 괜찮지만 큰 부상을 입기도 합니다. 약한 부분에 충격을 줌으로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경험은 우리로 더욱 조심하게 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방심을 하게 되고 비슷한 일을 또 겪게 됩니다. 자책도 해보지만 우리의 삶에 반복되는 일상의 모습입니다.

신앙 생활을 잘하다가 넘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뭔가 돌출된 부분에 걸린 것입니다. 모든 이들이 다 거기에 걸려 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작은 돌부리일지라도 거기에 걸려 넘어질 수 있습니다. 신앙이 살짝 흔들리는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나 신앙의 뿌리까지 뽑히는 비극으로 끝날 때가 있습니다. 시인은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신앙적으로 사망 직전까지 갔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심”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너진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깨져버린 상태입니다.

신앙이 무너지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시인은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다”고 이유를 밝힙니다. 악인의 형통함을 직접 목격한 후에 신앙이 거의 사망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죄가 분명함에도 법망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분노합니다. 하지만 나에게 피해를 입힌 자가 돈과 권력을 이용해서 법망을 피해갈 뿐 아니라 더 잘되는 것을 보면 분노를 넘어 삶이 망가질 정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신앙의 힘으로 이 정도는 이겨야한다는 소리를 듣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억울함만 증폭될 뿐입니다. 나에게 물질적, 정신적, 사회적 피해를 입힌 사람이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에게 없는 것을 본다면 신앙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시인은 삶에서 겪을 수 있는 신앙의 깊은 고민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시인은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해결책을 찾고 싶었지만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가 신앙의 고민을 해결하려 할 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심적 고통을 겪게 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다”고 합니다. 심적 고통을 이기고 드디어 해답을 찾은 모습입니다. “내가 깨달았다”는 말은 몰랐던 답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이미 알던 답을 마음으로 받아들였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신앙적으로 걸림돌에 넘어지면 이미 알고 있던 어떤 답도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경험을 합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신앙을 붙들고 있으면 알던 답을 새롭게 깨닫는 순간이 옵니다. 우리는 시인처럼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다”는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