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특정한 사람을 선택하셔서 복을 주시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시면서 하신 말씀은 너무도 유명합니다. 창세기12:2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는 말씀을 하나님이 하십니다. 아브라함 개인만 보면 이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큰 민족, 창대함’ 등은 당시 문화에서 한 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복들입니다. 이것이 전능하실 뿐 아니라 약속을 완벽히 지키시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아브라함은 말 그대로 복덩이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쉽게 어떻게 하면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복덩이가 될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합니다. 아브라함이 복을 받을만한 어떤 비밀을 갖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것을 알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창세기12:3에서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십니다. 아브라함 개인의 영화를 약속하신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쓰일 것이란 말씀입니다. 아브라함 개인에게 복이 넘쳐 그것이 밖으로 흘러 모든 민족에서 흘러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세상에 보여주는 거울 역할을 한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복덩이가 된 비밀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셔서 자신을 세상에 알리시겠다는 거대한 계획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쓰이는 것이 아브라함 인생의 최고의 복입니다. 그렇기에 그의 삶이 평탄하지 못하고 수많은 고생을 함에도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쓰였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시인은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라 기도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태평의 인생을 살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은혜와 복을 받은 사람은 항상 건강하고 평탄하고 사업이 번창하고 안전한 곳에 사는 것으로만 보는 현대인의 관점과 거리가 멉니다. 시인의 바램은 하나님이 모든 나라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할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개인의 물질과 건강의 복을 기독교의 하나님을 통해 얻는다는 의미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같은 연약하고 부러울 것이 없는 인생을 사용하셔서 세상에 자신을 알리신다는 의미입니다.
시인의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는 모든 신앙인이 품고 살아가야 할 비전 기도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모든 복을 무엇을 위해 사용해야 하느냐를 이 비전 기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코로나 시대에도 여전히 모든 민족들의 찬송을 받아야 할 거룩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기뻐할 뿐 아니라 즐겁게 찬양해야 합니다. 이것이 거룩한 도구로서 이 땅을 살아가는 신앙인의 참된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