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은 우리에게 평안함을 주는 동시에 지루함을 느끼게 합니다. 무엇이든 처음에는 낯설고 새롭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집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는 것은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듭니다. 성경을 읽을 때 낯설게 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작업입니다. 낯설게 함으로 익숙한 성경 이야기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할 말씀인 시편 1편은 익숙한 시이지만 낯설게 함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대표적인 내용입니다.
본문은 ‘복 있는 사람’이 누구냐로 시작합니다. 많은 이들이 어떻게 하면 복을 받을 수 있느냐는 쪽으로 이 시를 읽곤 합니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대신에 율법을 즐거워하고 밤낮으로 묵상하면 복을 받는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따라서 복을 받으려면 세 가지를 피하고 한 가지를 지키면 된다는 적용을 합니다. 과연 이 시는 복받을 방법을 가르칠까요?
오히려 이 시는 쉽지 않은 신앙의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쉽지 않은 길이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도 어렵고 힘든 길이기에 이것이 복받은 길이라 칭찬합니다. 아무리 복받는 길이라 해도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고통스러운 길이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것을 자주 묵상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없고 마음의 여유가 없기에 율법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것이 힘들다 합니다. 너무나 바쁘고 할 일도 많은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매일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하루가 24시간인데, 10분 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신없이 살아갑니다. 그런 삶을 사는 이에게 신앙이 있다는 이유로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라는 것은 너무도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입니다. 시간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기에 말씀과 함께 하는 시간은 그 자체로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많고 마음의 여유가 많아도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일은 버겁습니다. 그동안에 하지 못한 일을 하고 싶고, 이제는 누리면서 살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런데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라니 종교적인 틀에 나를 가둬두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낍니다.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할 것 같고, 누리지 못하도록 족쇄를 채우는 것 같습니다. 말씀을 읽으면 양심에 가책이 생기고 죄책감을 느끼게 할 것만 같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고, 마음의 여유가 생겨도 말씀과 함께 하는 시간만은 최소화시키고 싶어집니다.
과연 우리의 삶 속에서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일이 쉬울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어려운 선택입니다. 가장 꺼리는 선택입니다. 가장 나중에 하고 싶은 일입니다. 그러나 가장 먼저 해야 할 입니다. 특히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는 더욱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앞에 서야 합니다.과연 우리의 삶 속에서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일이 쉬울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어려운 선택입니다. 가장 꺼리는 선택입니다. 가장 나중에 하고 싶은 일입니다. 그러나 가장 먼저 해야 할 입니다. 특히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는 더욱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